휴가를 다녀와 격리를 하고 있을 때 다같이 DP(디피)볼 것이냐고 많이 얘기했었다. 언젠가 보자는 생각만 갖고 있었지 지금 당장 보자는 생각은 없었는데 같이 군생활하는 애들이 정말 재미있다고 빨리 보라고 하길래 이틀만에 정주행을 마무리했다.
디피는 탈영병을 잡는 보직을 갖고 있는 병사 두명이 탈영병을 잡아오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이다. 첫 화에 나온 안준호(정해인)의 모습부터가 과거의 나를 보는 듯 했다. 사회라는 것이 좋다는 선임의 말을 따라 사회에 있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사용하려는 모습이 있는 신병.
군대에 있으면 휴가가 최고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아무래도 다들 전역, 즉 군생활을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로 한다의 다른 의미는 잠시라도 군생활에서 분리될 수 있는 공간을 가장 좋아하는 것이다. 근데, 그것을 너무 모든 선택의 1순위로 생각하고 행동하다보면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느낀 순간이 많았다. 내 휴가를 위해 다른 모든 가치를 내려놓으면 놓치는 것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시간도, 돈도, 인간관계도.
DP 1화에서도 나오듯 안준호의 선임은 사회에서의 시간을 좋아했고 그 결과 탈영병을 잡지 못하고 잡으려 했던 탈영병은 사망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그리고 안준호는 자책감에 빠진다. 그 장면을 보며 다시 한번 내 자신에게 일러주었다. 어떤 것 하나를 절대 최우선 가치에 둬서는 안 되는 것이며, 욕망의 늪에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자고.
드라마 DP는 참 현실에 대한 얘기를 잘 해놓았다. 뭐 군대를 비하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있을 법한 부조리들을 구현시키고, 그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기에 그런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이제 병장이라는 계급이다보니 디피를 보면서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군생활동안 후임들에게 부조리를 하지 않는 선임이었나?
근데, 돌이켜보니 내가 너무 군생활에 충실하다보니 조금만 후임들이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격려를 하기보다는 지적하면서 그 부분을 실수하지 말라고 냉정하게만 말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 역시 그렇게 후임들에게 잘해주던 선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후회가 마구 밀려왔다.
군대에 있으면 그 사람 인성의 밑바닥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살면서 거의 처음 가져볼 권력을 갖게 됨으로써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곳에서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고 그렇기에 왜 부드럽게 말하는 법을 연습해야 하는지를 많이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군대에 있으면 청소를 왜 해야 하냐는 얘기를 참 많이 한다. 특히 군대에 있으면 잡초를 뽑기도 하고, 낙엽을 쓸고, 제설하는 등의 활동을 정말 많이 한다. 어차피 낙엽은 다시 떨어질 텐데, 잡초도 다시 자랄텐데 도대체 왜 청소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근데, 사회에 살다 보면 주변에 잡초도 적고 낙엽도 없다. 길은 언제나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예초도 누군가는 하고 있다. 그러니까, 항상 알게 모르게 누군가는 우리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바로 마지막화에 조석봉이 말하는 대사 때문이다. 수통도 안 바뀌는데 군대가 바뀌겠느냐는 의미를 담은 말, 그 말은 정말 마음을 확실하게 울리는 명대사였다. 이 말은 그대로 적용되어 우리가 우리 주변의 사소한 환경도 변화시키지 않고 있으면서 어떻게 더 큰 것이 변화하겠냐는 말을 하는 것 아닐까? 우리가 주변의 사소한 것들부터 변화시켜야 나비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을 더욱 절감했던 말이었다.
곧 있으면 전역하지만 전역을 하고 나서도 분명히 군대에서는 논란이 되는 일들이 있을 것이며 여러 사건이 생길 것이다. 그럴 때 단순히 방관자가 되지 말고 나 역시 힘들다는 것을 느끼고 나온 사람인만큼 같이 관심가져주고 더 좋은 군대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가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어디에서라도 내 역할이 있을 테니까.
그 누구도 절대 무시해서는 안된다. 세상에 이상한 사람 없으며, 나보다 하위에 있는 사람도 없다. 군대라는 조직 내에서만 후임이 내 후임인 것이지 사회에 가면 다 같은 사람이고, 어쩌면 후임이 나보다 높은직급에 위치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누구하나 무시해서도 안 된다.
더 조심하고, 더 부드럽게 표현하고 더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자. 남은 군생활이 길지는 않지만 그 시기동안이라도 더 후임들을 챙겨주고 더 열심히 살고 성실하게 군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디피, 내게 정말 많은 울림을 줬던 드라마이다. 시즌 2가 꼭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고, 복수심은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체감하고 간다.
모두들 꼭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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